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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별세 부친에 이어 담임 목회… 지역 섬김으로 신임 이어가 [4050 신목회열전]

[4050 신목회열전] 오영대 순복음축복교회 목사

  • 기사입력 2024.03.25 03:06
  • 최종수정 2024.03.25 06:56
  • 기자명 임보혁
오영대 순복음축복교회 목사가 최근 경기도 화성 향남읍에 있는 교회 예배당에서 자신이 모델로 등장해 광고를 패러디한 교회의 ‘가정예배’ 독려 포스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오영대 순복음축복교회 목사가 최근 경기도 화성 향남읍에 있는 교회 예배당에서 자신이 모델로 등장해 광고를 패러디한 교회의 ‘가정예배’ 독려 포스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스물일곱 살 설교 강단에 오른 젊은 전도사의 머리 가르마는 정확히 2대 8로 선명히 갈라져 있었다. 최대한 나이 들어 보이기 위함이었지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은 어색함이 밀려왔다. 전도사는 생각했다. ‘적어도 내가 계획한 20대에 이런 장면은 없었는데….’

오영대(43) 순복음축복교회 목사가 2007년 6월 10일 이 교회 2대 담임 목회자로 부임했을 당시 이야기다.

 

부친 별세로 어쩌다 담임목회


오 목사는 심장마비로 주님 곁으로 간 부친 오종석 목사를 이어 갑작스럽게 교회 사역을 이어가게 됐다. 최근 경기도 화성의 교회에서 만난 오 목사는 당시를 회상하며 “모든 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그의 법 아래 있었다”고 고백했다. 보통 부친의 교회를 자녀가 물려받으면 내부 교인의 반발과 지역 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받곤 한다. 하지만 부친의 장례식날 밤 오 목사의 어머니는 가족들을 부르시고는 “교회는 하나님의 것”임을 재차 강조하셨다. 오 목사 역시 교회를 위한 일이라면 교회를 떠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순복음축복교회 중직은 그런 오 목사가 사역을 계속 잇도록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교인들도 새벽기도에 나오면서까지 젊은 나이에 목회를 시작한 오 목사를 위해 뜨겁게 기도했다. 지역 주민 역시 부친의 소식에 안타까워하며 진심으로 교회의 앞날 또한 응원해줬다.

오 목사는 “이미 이웃들에게는 부친과 우리 교회가 지역사회를 잘 섬기고 사랑을 베풀어 온 것으로 기억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며 “장례식을 마치자마자 다시 전도에 나섰을 때 만난 주민들은 저와 교인들에게 위로와 환대, 응원을 보내주셨다”고 전했다.

오 목사의 부모는 1987년 연고도 없는 수도권 외곽 지역 한 상가 건물에서 교회 창립을 준비했다. 4개월 후 30명이 모여 창립 예배를 드린 순복음축복교회는 조금씩 지역사회의 마음을 얻어가면서 현 부지에 1653㎡(500평)의 교회를 건축할 정도로 부흥했다.

 

 

 

교회 안팎의 신임 비결은


오 목사 역시 부친 사역을 본받아 지역사회 섬기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축복5K사랑나눔센터’와 ‘만나트럭’ 사역이 대표적이다. 축복5K사랑나눔센터는 한 선교단체의 사역을 본 따 교회 반경 5㎞ 지역 내 장애인, 홀몸노인 등 복지 사각지대 계층에 음식, 생필품 등을 지원하는 사역을 펼친다.

‘만나 트럭’은 푸드트럭을 활용해 복지기관 등을 찾아 호떡 등을 나눠주며 섬기는 사역인데, 입소문을 타고 교회 이미지가 좋아지며 전도 효과로도 이어졌다. 그는 “오로지 하나님이 역사하셨기 때문”이라며 “최근 코로나를 지나며 막 신앙이 자라나는 성도들이 교회에 잘 정착하지 못하는 것 같아 속상했지만, 모세 옆에 있던 여호수아처럼 더 열심히 사역하려 몸부림쳤던 모습을 성도분들이 긍휼히 여겨주신 걸까. 조금씩 예배가 회복되고 있다”고 전했다.

초창기 하루에 서너 시간만 자며 심방했던 오 목사는 여전히 성도 심방과 전도를 향한 열정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지역에서 유명한 싸움닭과 같았던 성도가 예수님 안에서 변화돼 부드러워지고, 순종하는 모습을 보면 참 감사하다”며 “새 가족들이 말씀에 순종해 변화되고 신앙이 자라는 걸 보며 목회의 기쁨도 느낀다”며 웃어 보였다. 또 목회자로서 젊은 나이가 다음세대와 소통하고 공감하는 일에는 장점이라고 말한다. 그는 “20대 때부터 아이를 키워봐 젊은 부부들의 고충을 잘 알고, 학생회 사역도 오래 해 젊은 세대의 생각과 마음에 잘 공감할 수 있다 보니 교인들이 더 빨리 마음을 여는 것 같다”고 했다.

 

 

 

7000명 용사 세우기 비전


오 목사가 펼치는 사역의 목표는 하나로 귀결된다. 바로 “사람을 살리고 키우고 세우는 일”이다. 대표 사역으로 ‘바알에게 절하지 않는 7000명의 용사 세우기’가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그리스도인을 길러내는 사역이다. 영성·인성·지성·사회성 교육에 초점을 둔 기독학교 BSA(축복칠천아카데미)를 3년 전부터 운영하며 차세대 지도자를 길러내는 일에 집중하는 게 대표적이다. 늘 기도하는 성도로 만들고자 ‘중보기도 학교’와 ‘월삭 새벽기도회’도 정착시켰다. 특히 오 목사는 매월 첫 주간 새벽기도의 자리에 나오며 시간의 십일조를 드리자는 취지의 ‘월삭 새벽기도회’에 보다 많은 성도가 참여하도록 권면한다.

오 목사는 교단 혹은 초교파로 구성된 차세대 목회자 모임에도 종종 참여하며 목회의 방향성을 고민하기도 한다. 오 목사는 “목회 관점, 사역 노하우와 아이디어 등을 공유하며 격려하는 자리다. 모임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며 도전도 받는다”고 했다.

 

 

 

영적인 야성 본받고파


그에게 부친으로부터 배운 목회 철학을 묻자 오 목사는 “아버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먼저인 목회자셨고, 사명감으로 불타오르신 분이셨다”며 “아버지와 같은 믿음의 선배들에게 저 같은 차세대 목회자가 본받을 점은 영적인 야성이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세대는 너무 많이 배워 기도하기 전에 머리부터 굴리는 경향이 있지 않나 반성한다.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 성령충만한 삶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화성=글·사진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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