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이 된 조용기 목사님과 스물넷이 된 김성혜 사모님은 어머니이신 최자실 목사님의 말씀에 순종해 평생의 반려자가 됐습니다. 이전까지 김성혜 사모님께 조용기 목사님은 그저 친오빠와 같았으며 조용기 목사님도 김성혜 사모님을 어린 동생으로만 여겼습니다. 그래서 두 분은 서로를 "여보"라고 부르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두 분의 연예는 단 한 번, 창덕궁 비원에서 데이트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게다가 두 분은 최자실 목사님이 무서워 다른 사람과 연예해 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하지 못한 연예를 신혼 때 했어야 했건만, 조용기
얼마 전 출장을 다녀온 중동 지역의 A선교사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해외 선교사로 20년 넘게 사여겨하면서 과거 가정 문제로 힘들었던 적이 있다고 하더군요. 엄밀히 말하면 부부 문제였습니다. A선교사님은 “예전에 아내가 이래 저래 힘들다고 가출을 한 적이 있다.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할 수 없이 아내가 타고 다니는 차에 블랙박스를 달았다”면서 “집을 나가면 어디로 가는지 알아둬야 할 것 같아서 그랬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윌리엄 캐리’ 선교사 얘기를 꺼냈습니다.영국 침례교 선교사인 윌리엄 캐리(1761~1834)를 아시나요
중동 지역에서 10년, 20년 넘게 사역을 이어온 선교사들에겐 이야기 보따리가 풍성합니다. 많은 이야기들 속에서도 무슬림의 회심 이야기가 단연 돋보이더군요. 쉽지 않은 사역이기도 하거니와 드라마틱한 요소가 많기 때문입니다.지난 19일부터 일주일간 레바논 베카와 베이루트 등지에서 만난 선교사들로부터 크리스천으로 회심한 무슬림의 얘기를 직접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집트 출신의 유수프(가명·36)씨는 이른바 ‘금수저’ 가문 출신입니다. 정부 고위 관료가 많은 집안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모스크(이슬람 사원)에서 살다시피한 그는 대학 시절,
‘인구절벽 시대의 한국교회’ 시리즈를 준비하면서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경북 군위의 한 마을이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깡촌’으로 불릴만한 이 시골 초입에 들어서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세련된 건물과 영어로 적힌 카페가 들어서 있던 것입니다.젊은이들과 어린이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늙은 동네라고 해서 찾아왔는데, 마을 초입부터 사람들이 바글바글했습니다. 물론 외지인들이지만, ‘그나마 다행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저마다 SNS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물좋고 경치좋은 곳에는 사람들이 몰려오는가 봅니다. 덕분에 잠자는 듯
색다른 시도였습니다. 교회에서 진행하는 홈쇼핑, 그것도 비싸게 파는 홈쇼핑이었으니까요. 서울 신촌성결교회(박노훈 목사)가 진행한 홈쇼핑 ‘이보다 더 비쌀 수 없샵’은 단기선교 대상의 지역교회 성도들이 직접 만들거나 키운 상품을 팔아 그 수익금을 선교비로 사용하는 사역입니다. 올해는 교회 내 9교구가 단기선교를 가는 강원도 횡성의 한우, 오미자청, 수제 된장과 고추장을 판매했습니다.아이디어보다 더 인상 깊었던 것은 성도들의 열정이었습니다. 지난 1일 홈쇼핑 녹화 현장에서 쇼호스트가 된 성도들을 만났습니다. 성도들은 퇴근 후 저녁 식사
고혹적인 자태로 윤기가 흐르는 머리카락을 쓸어 내리며 “저요? 엘라스틴 했어요”라고 말하는 전지현, 다른 남자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연인을 보며 슬퍼하는 차태현을 향해 매몰차게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고 말하는 김민희.이게 무슨 타임머신 타고 밀레니엄 시대로 돌아간 아재의 추억팔이냐고 할 지 모르겠지만 최근 인터뷰를 위해 채은석 감독을 만나러 가는 길, 가슴팍엔 적잖은 설렘이 자리잡고 있었다. 채 감독은 앞서 언급했던 광고 속 장면들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그야말로 스타 감독이었다. ‘광고쟁이’를 꿈꾸며 캠퍼스를 누비던 내게
일가족이 함께 비극을 맞은 유나양 가족이 살던 집을 찾아간 날은 바람이 불고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날씨였습니다. 우산을 챙겨들고 광주광역시 남구의 아파트 경비실에서 유나양 가족이 살던 집 주소를 수소문했습니다.70대 중반의 경비원 할아버지는 “한바탕 끝났어. 아무도 없을걸. 지금은 조용해”라면서 동과 호수를 알려줬습니다. 방문 일주일 전쯤, 가족들의 시신을 발견하기 전까지 언론사들의 취재 경쟁이 치열했나 봅니다. 아파트 입구, 벽에 설치된 우편함들 사이에서 유나양네 우편함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각종 고지서와 우편물이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