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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재 목사의 후한 선물] 고난이 축복입니다

  • 기사입력 2024.03.26 03:04
  • 기자명 더미션

“고난이 축복이다.” 얼핏 보면 이상한 문장이다. 마치 “하양이 검정이다”라거나 “동그라미가 네모다”라는 문장을 읽는 듯하다. 주어와 술어가 잘 어우러져야 말이 되는데 고난과 축복은 서로 섞일 수 없어 보인다. “고난이 저주이지 어떻게 축복인가”라는 의문만 생긴다. 지금 고난 가운데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한 성도는 부잣집 외아들로 태어나 고난이라고는 모른 채 어린 시절을 지냈다. 일류대 공대를 졸업한 뒤 직장에서도 승승장구해 30대 초반에 부장직까지 달았다. 어릴 적 교회에서 세례도 받았고 결혼식은 교회에서 목회자 주례로 올렸다. 하지만 성공을 발판 삼아 더 큰 성공을 좇다 보니 일이 바쁘고 힘들다는 핑계로 교회를 떠났다. 40대에는 사업을 시작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행복한 삶의 정상에 드디어 오른 듯했다.

하지만 창업 14년 만에 회사가 큰 위기에 빠지는 뜻밖의 고난이 들이닥쳤다.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고 그는 어느 주일에 불교 신자였던 아내를 따라 불공을 드리기 위해 절에 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절 문이 닫혀 있었다. 실망해서 돌아가는 길에 우리들교회를 지나게 됐다. 예배당 외벽에 걸린 현수막이 눈에 확 띄었다고 한다. “고난이 축복입니다”라는 이상한 문장이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왜 고난이 축복인가?’ 심한 고난 중에 있던 그는 호기심에 아내와 함께 예배당으로 들어갔다. 마침 주일예배 중이었다. 고난으로 곤고했던 마음이 설교자의 간절한 외침과 눈물에 감동해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주일예배는 물론 새벽기도까지 빠지지 않고 열심히 참석했다.

그러나 상황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급기야 회사는 망했다. 그에게 더 큰 고난은 성실하게 살아온 자기 인생이 무너진 데 대한 수치였다. 이런 고난 가운데 사느니 삶을 끝내는 게 나아 보였다. 결국 어느 날 밤 그는 아내에게 문자를 남긴 후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아내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의 신속한 조치로 생명을 지킬 수 있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는 교회 소그룹 모임에 참여했고 양육도 받기 시작했다. 날마다 큐티를 하며 말씀으로 자기 죄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물론 여러 사건으로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공동체를 떠나지 않고 10년을 붙어 있었다. 현재 소그룹 리더가 된 그는 10년 전 자신처럼 고난 때문에 살 수 없다고 외치는 사람들을 돌보고 있다. 고난이 싫어 자기 생명을 죽음에 던졌던 그가 이제는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 살고 있다.

이 성도는 죽음에 이르는 고난을 통해 교회로 인도돼 주님을 만났다. 인생 최고의 축복을 얻었다. 그가 자기가 원하던 대로 이기며 잘 풀리는 삶을 이어갔다면 주께 나아왔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가 스스로 고백한다. 고난이 그를 주께로 인도하는 통로가 됐다. 그래서 고난이 축복이다.

고난은 우리가 모태에서부터 장착한 자기 의를 깨뜨린다. 고난은 우리가 살면서 열심히 쌓아 올린 공든 탑을 무너뜨린다. 고난은 인간의 본성적인 교만함을 해체한다. 우리가 고난을 겪으며 자신이 기댈 수 있는 존재의 터전을 잃어버릴 때 비로소 하나님을 찾는다. 내 고정관념이 깨질 때 비로소 주님의 말씀이 들리게 된다. 따라서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 고난 겪은 것이 우리에게 유익이다(시 119:71).

사순절 마지막 주간에 온 교회가 주님의 고난을 되새기고 있다. 우리는 죄 때문에 마땅히 당해야 할 고난도 피하려 하지만 예수님은 당하실 이유도 당하실 수도 없는 십자가 죽음의 고난을 기꺼이 당하셨다. 이것이 우리가 받은 사랑이다. 이 사랑이 우리를 고난은 저주라고 믿던 데서 돌이켜 고난이 축복이라고 고백하는 삶을 살게 한다. 이런 부활의 가치관이 이 땅에 충만하길 소망한다.

김양재 우리들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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