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서울 여의도에서 경기도 파주로 가는 기도원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기도굴에 앉아 그날의 말씀묵상(QT) 본문을 열었습니다. 주일학교 때부터 수없이 읽은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도굴에서 읽은 그 날의 말씀은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중소기업을 도와 ‘비즈니스 세계를 하나님의 사랑으로 변화시키자’는 사명으로 수천 명의 경영자를 교육해왔습니다. 이 일로 하나님의 소원을 이뤄드린다는 자부심과 보람이 있었습니다. 조직은 성장했고 고객의 요청은 넘쳤습니다. 이날 기도원에 간 것도 주님께서 주신 이 사명을 더 잘 감당할 아이디어를 달라는 기도를 하고 생각도 정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계획이 달랐던 것 같습니다. 기도굴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는 것 같았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내가 십자가 위에서 로마 군사에게 한 이 말은 사명으로 한 말이겠느냐, 사랑으로 한 말이겠느냐.”
사명 완수의 정점인 십자가 위에서 한 예수님 말씀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사명보다는 사랑으로 한 것이었습니다. 나는 오랫동안 예수님의 삶을 사명의 삶으로 오해했습니다. 그래서 사명에 헌신하는 것이 신앙인의 삶이라 생각했습니다. 사명을 위해 때로는 주변 사람과의 관계도 결정했습니다. 사명을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되는 사람과는 관계를 빠르게 만들어 갔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과는 조용히 멀어졌습니다.
퇴사한 직원이나 변화가 없는 직원, 성장 가능성이 작아 보였던 기업이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당신에게 온 사람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두 사랑하셨습니다. 당신의 사명을 위해 백성의 요청을 거부하거나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사명을 완수한 사랑, 통합된 삶 그 자체였습니다.
인생의 성숙함을 누리는 분들은 사명과 사랑이 통합된 공간으로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지극한 사랑의 행위가 사명의 완수가 되고 사명을 위해 하는 모든 행위가 사랑이 되는 그런 공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정확히 그 모델을 보여줬습니다. 내 앞길에 사랑이 있고 뒤를 돌아보면 사명이 완수되는 그런 삶을 살 수 있길 소망합니다.
어느 해 여름 파주 기도원 작은 굴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해주셨습니다. “지금 네 이웃을 먼저 사랑하여라. 그러면 네게 맡긴 사명이 완수될 것이다.”
<약력> △㈔위드메이커스 이사장 △사례뉴스 사장 △한국기독실업인회(CBMC) 중앙회 운영이사 △국제비즈니스선교연합(IBA) 운영이사 △한국수자원공사·강남구청 자문위원